이효리 [It's Hyorish]


흔히들 이효리가 인기를 얻게 된 과정을 언론플레이의 전형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실체가 없는 것을 부풀려서 꺼지지 않을 정도의 거대한 거품을 만들고, 반복 학습을 통해 마치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믿도록 유도해서 가짜가 진짜가 되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이효리 신드롬은 단순히 입지를 잃어가던 스포츠 신문들과 건수에 메말라있던 연예 매체들의 야단이 통한 사례 정도로만 보기엔 뭔가 안 맞는 구석이 있다. 이효리 이전에 이와 유사한 과정으로 스타가 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으며, 이후에도 수많은 섹시컨셉 가수들이 비슷한 유형의 언론플레이를 시도했으나 조금이나마 통한 예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거품을 만드는 것도 정도가 있다. 그야말로 대단히 이례적인 경우이자 상식으로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무슨 집단최면에 걸린 것 같았던 신드롬 사태 때 이효리가 오히려 약자였다는 걸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녀가 4개 시상식의 대상을 휩쓸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고 그건 이효리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대상을 받으며 전혀 기뻐하는 기색이 아니었던 그녀를 기억한다. 이효리는 이후 인터뷰에서 대상을 받을 때 너무 부끄러웠으며, 부족한 실력으로 그런 상을 받아버려 계속 앨범을 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까지 말했다. 애초에 그 사람이 가진 그릇이나 방향에 전혀 맞지 않는 기대치와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그냥 가볍게 함께 즐길 생각으로, 춤이나 패션 같은거나 보여주려고 앨범을 낸 여가수에게 마치 등떠밀듯 대상을 줘버린 건 지금 생각하면 사뭇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전혀 그럴 능력이나 야심이 없었던 사람에게 왕관을 씌우고 억지로 자리에 앉혀 슈퍼스타 행세를 강요한 것. 실은 이게 당시 불어닥쳤던 이효리 신드롬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니까 마치 비욘세나 아무로 나미에 같은, 음악과 패션을 모두 만족시키는 여성 팝 스타를 원하는 사람들의 바람이 기이한 형식으로 표출되었던 것이다. 왜 그게 하필이면 이효리였는지는 등장 시기와 함께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개인적인 매력이 관계가 있다. 오락 프로를 통해 보여주었던 솔직하고 유쾌한 모습, 다양한 스타일과 메이크업을 재치있게 소화해내던 패션 리더로서의 이미지에 솔로 앨범에서 보여준 해외 여가수들을 벤치마킹한 감각적인 비주얼이 겹치면서 불을 당긴 것이다. '텐미닛'의 뮤직비디오에서 미국의 흑인 여가수들이나 입고 다닐 법한 힙합 패션을 무척 세련되게 구현했던 이효리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막연히 그려왔던 여가수의 어떤 전형을 매우 구체적으로 꺼내어 보여주었다. 그리고 저 정도 그림이 나오는 가수라면 외국의 팝스타같은 재미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물론 다른 부분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기에 이는 이후 이효리가 무척 이상한 위치의 연예인으로 남는 원인이 되었다.

솔로 활동에 대해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반응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이효리가 가장 먼저 선택한 방식은 도피였다. 비슷한 시기에 배우 전업을 선언한 다른 아이돌 가수들처럼 연기로 방향 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알려져 있다시피 무려 '가수 생활에 회의를 느껴 연기 데뷔했다'는 말까지 남기며 의욕적으로 도전한 드라마 출연은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다시 가수로 돌아와야 하는 상황에 처한 시점에서 혼란스러운 행보가 계속된다. 보여줄 것은 별로 없는데 위치는 대형 스타였던 그녀가 단시간에 효과를 낼 수 있을만한 방법은 많지 않았고, 결과는 이벤트의 연속이었다. 통신 회사와 피처링진을 끌어들여 CM송으로 승부를 보기도 하고, 핑클 시절의 동료를 끌어모아 단발성 재결합을 시도하는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이 동원되었다. 다시 앨범을 내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았고, 한동안 그녀의 디스코그라피는 정규 앨범이 아닌 디지털 싱글로만 채워졌다.

그러나 결국 어쩔 수 없이 정면승부를 해야 했던 시점이 다가왔고 3년만의 정규 앨범이었던 [Dark Angel] 발표가 이어진다. 그동안 이벤트로만 버티면서 진짜 평가를 피해왔던 대가는 대단히 컸다. 야심작이었던 타이틀곡 'Get Ya'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대규모의 컴백 퍼포먼스에는 혹평이 쏟아졌고, 의상 모방, 립싱크, 표절 등 모든 명분을 동원한 대대적인 공격이 가해졌다. 이효리는 어느새 자신이 가요계의 대표 가수가 돼 버렸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으며 [Dark Angel]은 그런 기대에 부응하려 무척 애쓴 앨범이었으나, 그런 노력은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 소속사를 옮긴 후 첫 시도였던 뮤직 드라마의 결과는 더욱 안 좋았다. 상업적으로 부진했던 건 물론이고 음악적인 혼란은 가히 극에 달해 있었다. 실패를 만회하고 가창력을 증명하고자 그녀는 소몰이 전문 작곡가들을 대동하고 무대에서 SG 워너비 모창을 하며 소를 몰았다.
그리고 2집이 나온지 2년 반만에 세번째 정규앨범 [It's Hyorish]가 발매되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네이버 메인에 매번 기사가 실리곤 하는 이효리 비판 전문기자 모 님의 기사 제목 뽑는 방식을 빌어 말해보겠다. 이효리 3집 드디어 발매, 결과는?

믿을 수 없게도, 대성공이다. 타이틀곡 'U-Go-Girl'은 발표되자마자 엠넷에서 최단기간 1위에 올랐고 며칠만에 각종 스트리밍 사이트를 모조리 휩쓸었다. 음반 판매, 스트리밍, 다운로드, 미니홈피 기타 등등 현재 그녀의 노래는 모든 차트에서 1위를 기록중이다. 1집 텐미닛을 능가하는 반응이며 그녀의 가수 활동을 10년을 통틀어서도 가장 대단한 성과다. 3년 전 애니모션 같은건 상대가 안 된다. 뮤직 비디오나 퍼포먼스에 대한 반응도 폭발적이다. 컴백무대가 방송된 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인터넷 언론들은 일제히 그녀의 무대에 대해 호평을 보냈다. 마치 거짓말 같은 결과다. 원래대로(?)라면 그녀는 외국 노래 차용하고 부족한 가창력 퍼포먼스로 때운다는 비판을 받으며 최악의 평가 속에 컴백을 마무리해야 했다. 명랑히어로 식으로 말하자면 실망의 아이콘, 건수의 상징이었던 그녀가 아니던가. 이게 우리가 알던 그 이효리가 맞는가.

물론 맞다. 우리가 잘 알던 그대로의 이효리이며, 사실은 이게 진짜 이효리의 모습이다. 대체 무슨 얘기냐고? 여기에 대해서 말하기 위해선 그녀의 지난 가수 활동에 대해 다시 한번 얘기해야 한다. 2003년으로 돌아가보자. 마치 전설적인 성공 사례처럼 기록되고 있었지만 '텐미닛'은 사실 실패작에 가까운 곡이었다. 핑클에서 벗어나 이효리 자체로 부각되기 시작하기 시작한 최초의 시점인 '쟁반 노래방'에서 그녀가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건 섹시하고 육감적인 사람이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효리의 인기 비결은 정반대에 가까웠다. 솔직하고 유쾌한 분위기와 재치있는 말솜씨, 친근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태도. 애교 있는 모습과 예쁜 눈웃음. 이런 면모들은 이후 그녀가 내세웠던 과격한 섹시 코드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이효리가 가수 활동에서 제대로 장점을 보여주고 재능을 살리려면 당연히 이런 이미지를 돋보이게 하는 방향으로 가야 했다.

그러나 '텐미닛'에서 그녀의 그런 장점들은 전적으로 부정되었다. 쟁반을 맞고 눈웃음을 치며, 마음 줄듯 안 줄듯 달아나던 처녀가 갑자기 10분만에 남자들을 다 꼬실 수 있다며 야하게 차려입고 달려든 것이다. 이 곡이 먹히면서 이효리 개인과 가수 이효리의 간극은 급격하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오락 프로나 CF에서 보여주는 그녀의 이미지가 연결돼 있었던데 비해 그녀의 가수 활동에는 연속성이 없었다. 연예인으로서 이효리는 유쾌하고 친근한 매력을 가진 사람이었고 다양한 패션을 감각있게 소화하는 패션 리더였지만, 무대에서 노래하는 이효리는 10분만에 남자를 갖겠다며 달려들고 밤에 노크를 해달라고 유혹하는 야하고 과격한 여자였다. 밝고 가볍고, 산뜻한 노래를 부를 때 더 돋보일 수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대형 가수처럼 포장된 그녀에게는 그런 장점을 발산할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악순환이 이어진다. 대중이 슈퍼스타에게서 원하는 무게감있는 공연을 보여줘야 했으므로, 신곡을 발표할수록 컨셉은 과격해졌고 어둡고 카리스마적인 이미지가 주를 이루었다. 나의 몸매와 관능 파워로 너를 끝내주겠다는 식의 가사가 난무하고, 무대에서 이효리는 마치 대한민국 최고의 섹시 다이너마이트인 것처럼 굴었다. 굉장한 착각이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것이다. 같은 섹시함이라도 무슨 성인물 배우같은 섹시함과 귀여우면서도 산뜻하며 거부감 없는 섹시함은 다르다. 이효리는 후자를 표현하는데 훨씬 능한 사람인데 매번 노래할 때마다 같이 안 벗고 누우면 죽니 사니 하는 식으로 나오니 점점 재미없어질 수밖에 없는것 아닌가.
이 와중에 진정 이효리를 돋보이게 하는 곡들은 앨범 속에서 외롭게 숨어 있었다. 1집에선 '텐미닛'보다 'One two three N'four'가 더 좋았고, 2집에선 'Get Ya'보다 'Staright up'이 훨씬 괜찮았지만 이런 곡들은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를 얻지 못했다. 첫번째 방향 설정이 어긋났다는 점에서 '텐미닛'은 치명적인 패착의 징후였던 셈이다. 그동안 타이틀로 밀어왔던 곡들은 사실 이효리의 매력을 최대한 떨어뜨리는 노래에 가까웠다. 자칭 섹시스타를 외치며 별의 별 옷을 다 입고 나와 온갖 퍼포먼스를 벌이는 그녀의 모든 뮤직비디오를 합한 것보다, 그냥 저예산으로 수수하게 쇼핑하는 장면과 드라이브하는 모습을 편집한 'Straight Up'의 뮤직비디오가 100배는 더 섹시했다.

의외로 해답이 가까운 곳에 있었던 셈이다. 이것은 슈퍼스타의 위치를 강요받아왔던 그녀가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이자 접점이었다. 예상을 뒤엎고 앨범 [It's Hyorish]가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타이틀곡 'U-Go-Girl'은 그녀가 가수로서 진정 섹시한 매력을 보여주는 지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주 정확하게 짚어냈다. 이 곡의 최대 장점은 컨셉 송이 아니라는 것이다. '텐미닛', 'Get Ya', '톡톡톡'등 그녀가 기존에 불러왔던 노래의 주인공은 이효리가 아닌, 그 곡 안에서 만들어진 가공의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U-Go-Girl'의 화자는 이효리 자체다. 이 곡에서 그녀는 우리가 예능 프로에서 그동안 봐 왔던 고유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등장한다. 이효리가 예능이나 인터뷰에서 남자를 10분만에 유혹하겠다느니, 오늘 밤은 너의 것이라느니 하는 말을 하지 않으므로 당연히 이 곡에서 이효리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이효리는 노래를 듣고 있는 여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자신처럼 될 수 있는지를 조언하며, 트렌드 세터이자 패션 리더로서의 위상을 뽐낸다. 뮤직 비디오와 안무는 곡에 어울리는 발랄하고 산뜻한 모습으로 연출된다. 무대에선 어둡고 작위적인 몸동작 대신 밝고 자연스러운 눈웃음이 가득하다. 자신의 장점을 최악으로 떨어뜨리는 노래만 가지고서도 지금 자리에서 5년을 버텼던 그녀다. 이런 곡을 들고 나왔을때의 위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정답은 그녀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머리는 어떻게 만져야 좋을지 고민하지 말고 솔직하게 마음을 보여주라는 노랫말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U-Go-Girl'은 가수 이효리가 모든 혼란을 뒤로 하고 자신의 매력을 제대로 발견하기 시작한 최초의 순간이다.

이것은 얼핏 보기에 아주 복잡하게 엉킨 듯한 매듭이 원리를 알고 나면 아주 쉽게 풀려버리는 것과 같다. 인위적인 모습을 내세우지 않고 이효리 자체를 음악에 대입시킨다는 발상은 그 자체만으로 [It's Hyorish]를 들을거리 풍성한 앨범으로 만들었다. 소위 섹시컨셉 댄스 가수의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앨범에서 사랑 노래는 수록곡의 절반도 안 된다. 대신 이효리는 곡마다 자신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며 현재의 심경을 노래한다. 그간 자신을 끈질기게 괴롭혀온 시선들을 음악으로 불식시켜 버리겠다고 선언하는 '천하무적 이효리'는 앨범을 여는 주문과도 같다. 단 한번도 제대로 채굴되지 않았던 금광이기에 그냥 삽을 뻗는 것만으로도 캐낼 거리가 마구 나온다. 소녀들을 위한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법 전수라든가, 멋진 남자로 자라주길 부탁하며 소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든가, 언론과 안티를 향한 자세와 스스로에 대한 다짐, 힘들었던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 20대를 보내고 30대를 맞이한 심경.. 기타 등등. 물론 '텐미닛'과 같은 노래를 부르는 이효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도 마련돼 있다. 지금 시점에서 앨범 한 장으로 자신을 이보다 더 많이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
사운드 면에서도 국내 댄스뮤직 앨범으로서 가히 최선을 담았다고 할 만하다. '오프 더 레코드'에서 이효리는 지금 가요계 트렌드를 따라가긴 싫고,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들은 유행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먹히기 어렵다며 그래도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쪽으로 해야 할 거라고 말한다. 일렉 대세를 따르지 않고 힙합 비트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간 'U-Go-Girl'은 현재 가요 트렌드와 반대되는 지점에 위치한 곡이다. 남들 다 하는거 따라가는 대신 새로운 대세를 이끌겠다는 의지와 자신감의 표현인 셈이다. 빌보드 벤치마킹처럼 보이는 트랙들은 의외로 많지 않고, 대부분의 곡들이 적당히 감기는 알앤비 사운드에 팝적인 멜로디를 조합하는 형태로 완성되었다. 비교적 여유있는 앨범의 흐름에 마치 탁탁 찔러주듯 포진돼 있는, 후속곡 감 댄스곡들의 퀄리티는 그녀의 영향력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을 정도로 높다. 잘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가진 것과 보여줘야 하는 것이 아주 적절한 비율로 섞여 있고 이것은 이효리의 능력으로 들려줄 수 있는 최상의 결과물이다.

[It's Hyorish]의 유일한 단점은 기대치를 지나칠 정도로 웃도는 앨범이며, 너무 급격한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져서 지난 앨범과의 연결고리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난 이 점을 이렇게 파악하려고 한다. 이효리는 음반 활동을 통한 정면승부에서 패배할 때마다, 예능 프로로 돌아가 자신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손실을 만회하고 입지를 유지했다. 이게 여러 번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알게 되지 않았을까. 사람들이 자신에게 원했던 것과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것의 거리가 실은 매우 가까웠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이것을 발견하는 순간 그야말로 놀라운 급성장을 이루게 된 것이다. 장담하건대, 이건 그저 시작일 뿐이다. 'U-Go-Girl'은 단순히 곡 잘 받고 안무 잘 따서 얻어걸린 게 아니라 오랜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발견된 것이기 때문에, 이효리가 가수로서 이 아래로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앨범 [It's Hyorish]는 정점이 아니라 기준으로 남을 것이다.

이효리의 그 희귀한 퍼스널리티는 수많은 그녀의 워너비들이 그토록 원하고 흉내내었음에도 절대 도달하지 못했던 특별한 재능이다. 그리고 음악에서 전혀 발휘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위치를 5년이나 유지시켜 줄 수 있을만큼 대단한 무기이기도 했다. 앞으로는 이 재능이 음악을 통해서도 발휘될 것이다. 그 위력이 어떤지는 이미 'U-Go-Girl'의 센세이셔널한 반응으로 증명되고 있다. 덤으로 이효리는 엄청난 연습량과 노력으로 그동안 결점으로 지적되고 있던 라이브 문제마저 해결했다. 흠 잡을 구석이 없다. 매번 슈퍼스타의 간판 앞에서 도망치던 이효리가 이 정도 잠재력을 가지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대단히 놀라운 결말이다. 이 시점에서의 앨범 [It's Hyorish]는 마치 한때 유행하던 퓨전 판타지의 클라이막스를 연상케 한다. 영문도 모른 채 이계에 떨어져 어찌할 줄 몰라하던 나약한 소년이 실은 그 세계를 구해낼 진정한 영웅이었던 것처럼, 과도한 기대와 관심 속에서 허덕이며 혼란을 거듭하던 아이돌 소녀는 사실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좀처럼 나오기 어려운 진짜 슈퍼스타였던 것이다.


Track List

1. 천하무적 이효리
2. Lesson
3. U-Go-Girl (feat. 낯선)
4. 사진첩
5. 이발소집 딸
6. Don't Cry
7. 괜찮아질까요
8. Sexy Boy (feat. 휘성)
9. 빨간 자동차 (feat. 김건모)
10. Hey Mr. Big
11. P.P.P
12. My Life
13. Unusual (feat. 서정환)

by 웃기 | 2008/08/04 03:03 | 2 | 트랙백 | 덧글(11)

엄정화 [D.I.S.C.O]


가수 엄정화에게 지난 몇 년간은 시련의 시기였다. 인디와 오버의 유명 전자음악 뮤지션들을 대거 참여시킨 8집과 롤러코스터 지누의 지휘아래 완성된 9집은 그녀의 어떤 앨범들보다 음악적인 야심으로 가득한 작품이었지만, 아쉽게도 상업적인 면에서는 들인 공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내고 말았다. 제대로 주류의 혜택을 입지 못했던 인디 뮤지션들의 음악을 소개하고, 한국 대중음악상 일렉트로닉 댄스 앨범상을 수상하는 등 의미 있고 과감했던 모험이 가져다준 타격은 적지 않았다. 노래가 충분히 알려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차트 하위권을 맴돌다 활동을 접는 건, 한때 냈다 하면 1위는 깔고 들어가던 엄정화에게 무척 당혹스러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음악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엄정화의 이미지는 대중과 괴리된 노래를 부르는 왕년의 인기가수 쯤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엄정화의 새 미니앨범 [D.I.S.C.O]의 목적은 분명하다. 그동안 인기 가수의 대열에서 멀어졌던 엄정화를 다시 대중들 앞에 불러 세우는 것. 그리고 그동안 얼마나 음악적인 성장을 이루었는지를 증명해 보이는 것. 여섯 곡이라는 앨범의 분량이 아쉽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딱 이 정도가 적당할 수도 있다. 지금 엄정화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음악 세계를 펼쳐보일 정도로 충분한 분량의 곡이 담긴 정규 앨범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다시 한번 각인시킬 수 있을만한 히트곡의 존재다. 그녀가 발을 딛고 서있는 곳은 선의와 의욕만으로 모든 것이 용납되는 세계가 아니다. 연달아 두 번의 실패를 경험한 탓에 단 한 곡이라도 히트를 시킨다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했다. 여기서도 주춤하게 되면 그 다음은 굉장히 어려워질 수 있는 것이다. '가수 엄정화를 기다리는 사람이 더 이상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작년의 인터뷰는, 엄정화가 가수로서 느끼고 있었던 위기 의식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아마 그녀는 무엇보다 여기에 총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엄정화는 이번 신보를 미니 앨범이 아닌 정규 10집으로 봐주길 원했지만, 앨범 [D.I.S.C.O]는 사실 한 곡을 위해 존재하는 음반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른 다섯 곡은 타이틀곡을 받쳐주는 대규모의 인트로와 아웃트로인 셈이다. 첫번째 곡 'Kiss me'에는 후반부에 원곡에서 떨어져 있는 짧은 곡이 하나 붙어 있는데, 이걸 개별된 트랙으로 치면 타이틀곡 '디스코'는 정확히 앨범 가운데에 위치한다. 이 앨범을 듣는 것은 마치 짧은 코스 요리를 맛보는 것과 같다. 20분이 조금 넘는 재생 시간에는 전채부터 디저트까지 모든 과정이 담겨 있다. 물론 메인 요리는 '디스코'다.

'디스코'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싱글이다. 대중 가수로서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을만큼 매력적인 멜로디라인을 갖추고 있음은 물론이고, 복고와 첨단을 아우르는 사운드는 최근 전자음악 붐이 일고 있는 가요계 유행에서 딱 반발짝 정도 앞선 채 듣는 이의 감각을 오묘하게 자극한다. 오랜만에 시원시원한 전개를 들려주는 댄스뮤직 앞에서 엄정화는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자신의 음악과 춤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다. 직접적으로 남녀간의 사랑을 노래하지 않는 곡임에도 불구하고 '디스코'의 가사는 대단히 로맨틱하다. 음악을 가볍게 듣는 사람들과 보다 깊게 듣는 사람들, 소위 대중과 매니아가 모두 좋아하는 곡을 부르고 싶다던 엄정화의 바람은 이 곡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실현되었다. 쉽지만 진부하지 않고, 섹시하지만 천박하지 않다. 간만에 들을만한 곡이 많이 나온다는 평을 얻고 있는 최근 주류 가요씬에서도 이 곡은 가히 정점에 있다고 할 만하다.

최근 빅뱅, 거미, 태양의 곡들을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메이저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는 YG와 손잡고 앨범을 내놓은 것은 너무나 적절한 타이밍이라 어떻게 보면 살짝 뻔하기까지 하다. 눈여겨볼 것은 엄정화가 YG와 접촉을 시도한 시기다. 엄정화는 인터뷰에서 빅뱅의 '거짓말'을 듣고 이런 곡이 갖고 싶어서 YG를 찾아갔다고 했다. 최근 급변하는 메이저 가요씬의 흐름을 생각하면 이 앨범의 기획에는 상당한 시차가 존재하고, 이는 그녀가 영리하고 날카로운 안목의 소유자임을 다시 한번 증명하는 근거가 되어 준다. '디스코' 한 곡에 대단한 비중이 실려 있긴 하지만 이 앨범은 90년대에 범람하던 타이틀곡 하나 건질만하고 나머지는 곡수 채우기에 불과했던 댄스가요 앨범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아직도 엄정화는 CD 한 장을 책임있게 완성해 내는 것에 관심이 있고, 이는 음반의 구성이나 수록곡들의 질을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앨범의 전 수록곡에서 엄정화는 YG판 힙합/일렉트로닉 댄스에 전혀 밀리지 않으면서 그 동안 해왔던 고생이 헛되지 않았을 보여준다. YG의 뮤지션들은 조력자의 위치에 있을 뿐, 앨범에서 가장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은 엄정화의 목소리 자체다.

요즘 엄정화의 9집을 다시 들으면서 이게 당시 듣던 것보다 훨씬 잘 만들었고, 공이 많이 들어간 앨범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녀의 신곡 '디스코'는 한때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가수답지 않게 비교적 저조한 성적을 올렸던 지난 몇 년이 사실은 정체된 시기가 아니었음을 알리는 알찬 결실이다. 만약 '다가라'를 부르던 시절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7년을 넘어와 '디스코'를 부르는 걸 봤다면, 굉장히 낯설다고 느꼈을 것이고 이럴 수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옷만 갈아입는 변신의 여왕이 아닌, 실제로 음악적인 변신을 하기 위해 그렇게 애써왔던 엄정화의 몇 년이 두 장의 앨범으로 남아있는 이상, 나는 엄정화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수긍할 수 있고 보다 반갑게 받아들일 수 있다.

2년만의 신보가 미니앨범으로 나온 건 여전히 감질나고 정규가 나와야 할 시기인 걸 알지만 지금으로선 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디스코'가 YG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히트곡 대열에 들어서면서 이 앨범이 의도하던 목표는 어느정도 달성되었고, 엄정화는 가수로서 다시 새로운 음악을 선보일 수 있을만한 동력을 얻었다. 그리고 그녀를 지켜보던 이들은 '디스코'라는, 엄정화의 2000년대를 대표할 수 있을만한 아주 멋진 곡을 선물받았다. 누구누구의 노래만큼 초 대박을 내진 못했지만 이만하면 괜찮지 않은가. 이제 겨우 10집일 뿐이고, 그녀는 새로운 음악에 눈을 떴으며,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 있는 것이다. 


Track List

1. Kiss Me (feat. YMGA)
 2. DJ (feat. CL)
 3. D.I.S.C.O (feat. TOP)
 4. Party (feat. G-Dragon)
 5. 흔들어 (feat. Perry)
 6. Celebration

by 웃기 | 2008/08/03 02:52 | 2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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